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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달린 평평이의 생각노트

'부활' 이태석 신부 그가 남긴 의지들 본문

영화,드라마 리뷰

'부활' 이태석 신부 그가 남긴 의지들

바퀴달린 평평이 2023. 4. 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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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년 후 톤즈의 모습

10여 년 만에 돌아온 톤즈는 내전이 끝난 후 안정을 찾았다. 사람들은 제대로 된 옷을 갖춰 입고 있었고 위생상태도 깨끗했다. 마을에는 번듯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어렸던 브라스 밴드 단원들은 어느새 훌쩍 커 성인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10년 만에 다시 만난 제작진들을 오랜 친구를 만나듯 반겨 주었다.

마을 주민 모두가 이태석 신부를 그리워하고 추모하며 그의 정신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태석 신부를 진짜 아버지처럼 생각한다.

 

제작진들은 작은 선물을 준비했는데.. 바로 새 악기였다. 이태석 신부가 돌아가신 이후  톤즈 돈보스코 브라스밴드는 제자들에 의해 유지되어 오다가 2016년 중단되었다. 그들은 새 악기를 받아 들고 들뜬 마음으로 한 번씩 불어 보았다. 한 친구가 색소폰으로 아리랑을 연주하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국말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2】 한센인 마을

"가난한 사람 중에 가장 가난한 사람이 나환자(한센병 환자)가 아닌가 생각해요. 왜냐면 외적으로도 상처가 있고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에 생긴 내적인 상처도 있고."

그는 맨발로 다녀 발에 상처가 많이 나는 한센인들을 위해 신발을 만들어 주기로 한다. 그런데 한센병 환자들은 발가락이 없어지고 발이 뭉툭해져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신발을 신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태석 신부는 환자 한 명 한 명의 발을 모두 종이에 그려 각자에게 맞는 신발을 만들어 주었다.

 

아투아이 알비노(30세)

그는 2001년 라이촉(한센인 마을)에 살던 소년이었다. 아투아이는 7살 때 한센병 환자였던 할머니를 따라 라이촉에 왔다.

 

"어느 날 신부님이 저에게 화를 내셨어요. 제가 교과서를 나무 밑에 펼쳐놓고 농구를 하고 있는데 비가 와서 교과서를 두고 지붕 밑으로 피했어요. 그때 신부님이 이동진료를 마치고 우산을 쓰고 돌아오셨는데 망고나무 밑에 있는 교과서를 본 겁니다. 비가 그치자 저를 찾으셨습니다. 그때는 화가 많이 나 보여서 저를 때릴 것 같았어요." "너 이리 와. 너에게 이 책을 준 건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너는 미래에 특별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너를 돕기 위해 여기에 왔다. 다음에는 비가 오는 곳에 교과서를 두지 마라." "저는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부님이 교과서를 돌려주면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셨고 저도 안 그러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는 현재 UN에서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국 앵커이며 기자이다. 결혼하여 세 아이의 아빠가 됐다.

아투아이는 그 감사한 마음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그는 인터뷰 중 이태석 신부를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가난하고 조그맣던 아이가 이렇게 커서 가정을 갖게 됐습니다. 신부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른이 된 제 모습과 우리가족, 아이들을 보고 정말 좋아하실 겁니다."

 

 

3】 톤즈의 여성들

"그중 특별한 한 가지가 여아 선호 사상이 있습니다. 이유는 바로 결혼할 때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가려면 소를 지불해야 해요. 소를 작게는 30마리, 많게는 100마리 200마리까지 올라가요. 교육의 정도에 따라서, 여자들을 예쁘게 꾸미고 잘 먹이고 이런 것들이 정말 여자를 한 인간으로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품으로 포장을 예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죠.

그렇게 시집간 여자들이 소를 받고 시집을 갔기 때문에 소처럼 죽도록 일을 해야 해요."

이 신부는  톤즈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에 여성 기숙사를 따로 세웠다.

'아순타'는 그 학교의 졸업생이다. "저는 중학교 때 톤즈로 유학을 왔습니다. 제 꿈은 과학자입니다. 여자 기숙사를 만들어 주신 신부님 덕분입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더 이상 공부를 못하게 될 위기를 맞지만 이태석 신부의 형 '이태영 신부'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공부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녀는 결국 당당하게 한국에서 이화여대 졸업장을 받아 귀국하게 된다.

 

 

4】 전쟁의 아픔을 치유한 음악

"처음 그곳에 가서 아이들을 보니까 전쟁 중이어서 아이들의 심성이 정상적인 아이들이 아니에요. 자기 눈앞에서 가족들이 죽어가고 총에 맞아 죽어가고 폭탄 맞아 돌아가시고 이런 걸 본 아이들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아이들이 아니에요. 그래서 음악으로 어떻게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처음에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정말 감격스러운 날이다. 총성만 울리던 톤즈가 오늘은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톤즈가 되었다. 사람을 죽이던 총을 녹여 트럼펫, 클라리넷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쓴 아이도 있어요."

제자들은 음악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공동체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제작진은 브라스 밴드를 재 창단할 수 있게 악기와 단복을 선물로 가져왔다. 옛 단원들이 다시 모여 '톤즈 이태석 브라스밴드'를 창단한다. 그리고 그들은 당차게 악기를 연주하며 이태석 신부가 생전에 걸었던 길을 행진한다.

 

5】 남수단 교과서에 실린 이태석 신부

남수단 아들은 학교에서 정규 수업 시간에 이태석 신부에 대해서 배운다. 남수단의 학생들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의 봉사와 헌신이 남수단 사회가 변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배우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이 배웠으면 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6】 의사가 된 제자들

아롭 / 주바 국립병원 인턴

"12살 때 몸이 아파 움직일 수도 없었는데, 하루는 더 안 좋아져서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프기 시작할 때 형이 말라리아에 걸려 이틀 만에 사망했습니다. 큰 아들이 죽고 나서 두 달 후에 제가 너무 아프기 시작하니까 어머니는 "너마저 죽는다면 내가 먼저 죽는 게 낫다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을 더는 볼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창으로 당신의 배를 찔렀습니다. 우리는 곧바로 이태석 신부님을 찾아갔고 신부님은 저와 어머니의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제가 살아났을 때 의사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벤자민 마틴 형제

벤자민 마틴 형제는 2001년 이신부를 만났다.

벤자민은 주바 국립병원 의사이다. 수단 카르튬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2016년 졸업했다. 그는 인턴을 마치고 곧바로 남수단으로 돌아왔다. 의사가 부족한 현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를 치료할 때면 신부님이 환자를 대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신부님은 누군가 병실에 있으면 항상 인사를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할 때 제 자신이 신부님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신부님처럼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고 사랑으로 대하려고 합니다."

마틴은 약사다. 이신부는 어린 시절 마틴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었고 마틴은 약사의 꿈을 갖게 되었다. 돈이 없어 진학이 어렵자 어렵다고 소문난 에디오피아 유학생 선발시험에 응시해 합격하고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의사가 되는 것과 비교해 보자면 의사는 때론 많은 장비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약사는 응급상황 시에 약으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저는 라이촉(한센인 마을)과 같이 도움이 필요한 마을에 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다가가기 위해 약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주바 국립대하교 의과대 

남수단에서 가장 큰 의과대학이다. 전체 학생 수는 650명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정말 보배 같은 존재들이다.

이곳 의과대학에만 이태석 신부의 제자가 40~50명이 된다. 이들은 하나같이 이태석 신부님 때문에 의사가 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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